▲ 지난 8일,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장애인 관련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에 대한 토론회'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정유림 기자  
▲ 지난 8일,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장애인 관련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에 대한 토론회'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정유림 기자
장애계 단체와 방송 관계자들이 ‘장애인 관련 방송 언어 가이드라인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하 인권포럼) 부설 정책모니터링센터는 ‘장애인 관련 방송 언어 가이드라인’의 초안을 구성하고, 이와 관련한 토론회를 지난 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이강철 연구원  ⓒ정유림 기자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이강철 연구원 ⓒ정유림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강철 연구원은 “올해 4월, 한글 사용에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아나운서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한자 장애인’으로 비하해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일은 장애인 방송 언어 가이드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부분은 언어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인권포럼 부설 정책모니터링센터가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방송된 공중파방송 장애인의 날 특집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방송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총 34개의 프로그램 중 약 94.1%에 달하는 32개의 방송에서 장애인 비하 및 차별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 당 평균 비하 및 차별 표현 횟수는 13.7회로 나타났다.


이강철 연구원은 사용빈도는 많지만 장애인 비하용어로 잘 인식되지 않은 부적절한 표현을 11가지 유형으로 나눠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11가지 부적절한 유형은 ▲장애인을 동정이나 자선의 대상으로 묘사 ▲장애인을 슈퍼맨 또는 감동의 원천으로 묘사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묘사 ▲장애인의 가족을 영웅적으로 묘사 또는 죄인으로 묘사 ▲성인 장애인, 특히 지적․자폐성 성인 장애인을 낮잡아 표현 ▲개인이 아니라 장애에 초점을 맞춘 묘사 ▲의학적 용어로 장애를 표현 ▲장애를 자세하게 설명 ▲완곡어법 사용 ▲장애인 비하발언 ▲기타 부적절한 표현들로 분류됐다.


이를 토대로 센터는 장애인 관련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의 초안을 마련하고, 이에 방송 제작 시 지켜야 할 8개의 일반 원칙과 구체적 지침 등을 넣었다.


이 연구원은 방송 제작진이 지켜야 할 일반적인 원칙으로 ‘장애보다 사람을 부각시킬 것’과 ‘장애 정도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에 더 집중할 것’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방송이 장애를 지나치게 부각하면 비장애인들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1급 시각장애인 수영선수 한동호 군’이라고 표현하는 대신, ‘수영선수 한동호 군’이라고 표현해 장애인의 동질성보다 다양성과 개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이 연구원은 △장애인을 ‘초인’으로 묘사하거나 성공한 장애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 것 △장애인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묘사해 동정의 대상이 되도록 하지 말 것 △장애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미리 가정하지 말고 그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강조할 것 △의학적인 용어나 표현법으로 장애를 설명하지 말 것 △‘장애는 엄청난 비극이다’와 같은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릴 것 △장애인 당사자 및 단체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활용할 것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아울러 대표적인 장애인 비하표현 및 차별어로 ‘병신’, ‘불구’, ‘등신’, ‘귀머거리’, ‘애꾸눈’ 등이 거론됐으며 ▲‘휠체어 장애인’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는 ‘다목적 화장실’과 ‘장애인 우선 엘리베이터’ ▲‘장애우’와 ‘장애자’는 ‘장애인’ ▲‘장애를 앓은’은 ‘장애를 가진’ ▲‘절름발이 정책’은 ‘장애인 정책’ 등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국립국어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 관계자, 장애인 활동가 등이 토론자로 나서 장애인 관련 방송 언어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국립국어원 조원형 연구사는 세태를 선도하는 대중매체 언어의 특징을 강조하며, “해학적이라 할지라도 장애인을 비하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면 적어도 방송 및 언론매체에서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문성철 과장은 “‘장애인 관련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은 강력한 제재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 심의에서 이러한 부분을 적극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방송 심의를 통해 사후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장애인 관련 묘사 및 방송에 대한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자리에 참석한 KBS 박천기 PD와 MBC 오승훈 아나운서는 “방송 일선에서 근무하는 방송인으로서, 현장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사용될 장애인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에 뜻을 모았다.










  ▲ KBS 박천기 PD  ⓒ정유림 기자  
▲ KBS 박천기 PD ⓒ정유림 기자
박천기 PD는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방영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세서미 스트리트」는 방송 초기부터 휠체어를 타거나 다운증후군인 장애인이 정기적으로 출연해, 어린이들로 하여금 장애인들 또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프로그램부터 휠체어를 탄 어린이가 비장애 어린이와 함께 등장하는 사례 등을 통해, 어린이 시절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 장애인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의식을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PD는 “방송에서 지양돼야 할 장애인 무시발언이나 비하 발언을 제외하고, 의도하지 않게 방송된 표현이라면 용어 한 단어마다 신경 쓰기보다 전체 맥락을 고려해 평가를 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정책모니터링센터 관계자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방송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고, 이것을 막을 수 없는 제재방법도 마땅치 않다.”며, “장애인 관련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의 보급으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 비하 표현 사용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은 작성된 초안을 바탕으로, 장애계단체와 방송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 12월 말 가이드라인을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