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생명은 존중받을 가치도 없는 것입니까”
지난 19일 서울북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장애인 생명 경시 판결 규탄 기자회견’에서 윤삼호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소장은 “장애인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사회 깊숙이 물들어 있다”며 이같이 힐난했다.
지난 5월11일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 11부는 눈꺼풀이 처지고 안면마비가 있는 등 선천적 장애를 가진 2개월된 딸을 질식시켜 숨지게 한 어머니 이모씨에게 가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으며 자수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바 있으며 검찰 측도 항소를 포기했다.
윤 소장은 “비장애아동이 살해된 경우라면 이처럼 무죄판결에 가까운 처벌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장애영아살해사건 판결은 합법적으로 장애인 살해를 무죄로 인정한 판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자보건법에는 태아가 장애 가능성만 있어도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도 있다. 언론도 장애영아를 살해한 부모에 대해 동정하는 논조로 기사를 냈으며 시민사회단체도 침묵하고 있다”며 “장애인 살해에 대해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분위기”라고 개탄했다.
이 날‘UN국제장애인권리협약모니터링연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보통 아동살해사건의 경우 판례상 10년이 넘는 징역형이 선고된다. 아무 저항능력이 없는 아동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가중처벌이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발효된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제10조는 당사국은 다른 사람들과 대등하게 장애인이 생명권을 효과적으로 향유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36조에는 국가 및 지자체는 장애아동이 장애를 이유로 다른 아동과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는 장애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다”며 “장애인들의 죽음이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정하고 엄중하게 집행해야 하는 법마저 스스로 법을 부정하고 가해자에 무죄나 다름없는 관대한 판결을 계속 내린다면 장애인에게 이 사회는 무법천지나 다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법을 집행하는 모든 이들은 장애인들도 인간답고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하면서 살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모니터링연대는 검찰측에 항소포기 이유를 밝혀달라는 항의서를 지난 18일 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2003년 11월에는 지적장애1급인 손녀를 극약을 먹여 살해한 조부모가 징역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2007년 9월 술이 취한 상태에서 6살 된 지체장애 아들을 입을 막아 살해한 신모씨도 징역 4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